[후기] 20220402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후기] 20220402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윤나무/정운선/안창용/이현진/김대웅/이다정


개인취향 주의
스포일러 주의


0.
낮에 렛미플 커튼콜 찍고 뛰어서 정동으로 날아와야 하는 일정이라 걱정이 좀 있었는데 생각 외로 지하철 타이밍이 좋아서 널널하게 도착했다. 중블 꽤 뒷자리 앉았는데 오히려 장면 넓게 볼 수 있어서 좋았음. 일부러 연습실 영상 같은 것도 하나도 안 보고 가서 궁금증 폭발하며 보았다.

1.
마트의 임시 매니저를 맡게 된 수아는 취미 삼아 자주 방문하는 유원지에서 원숭이 인형탈을 보고 무심결에 사진을 찍었다가 팁을 주게 될까봐 자신이 전문 사진가라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러자 원숭이 탈을 쓰고 있던 노인은 돈을 줄 테니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하게 되고 수아는 공돈이란 생각에 수락한다.

네불라라는 노인은 의상과 소품까지 준비하며 철저하게 자신의 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흉내낸다. 그 과정에서 수아는 네불라가 어느 잔혹한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를 기피하게 시작한다. 얼른 사진 찍고 돈이나 벌고 말아야지 생각하던 어느 순간 돈 때문에 자신의 신념과 타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네불라와 닮은 일면을 발견한다.

그 이후 수아는 네불라가 자신의 죄를 어떻게 직면했는지, 또 어떻게 무뎌졌고 또 어떻게 고통 받았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네불라는 자신의 인생을 모두 들은 수아에게 자신을 평가해달라고 부탁한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날 어떻게 봐야 하는지. 내가 너무 싫은데… 싫어하고 싶지가 않아요."

평가는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 수아는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하지만 마지막, 수아는 네불라를 불러 자신이 찍은 네불라의 인생을 건네준다.

"그렇게 네불라는 한참 동안 자신을 들여다 봤어. 가끔 웃고, 가끔 울면서 자신을 참아냈어."

그렇게 평가는 그 자신의 몫이 된다. 어떠한 결말을 내렸는지 네불라는 그곳을 떠나고 수아는 이제 심판대에서 네불라를 내려놓고 그 자신을 올려놓을 차례를 맞이한다. 수아는 입양아로서 자신이 상처 받았음을, 동시에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결과물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곤 아주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가족을 찾아 마주본다.

2.
함부로 따뜻하지 않게
함부로 냉정하지 않게

정동에서 내보낸 글귀 딱 그대로의 감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우리는 네불라에게 함부로 따뜻할 수도 없고 함부로 냉정할 수도 없다. 근데 삶이란 늘 그런 것 같다. 잘 모르는 타인에 대해서 우리는 참 쉽게 이야기한다.

천사 같다. 저런 사람이 복 받아야 하는데.
인간 쓰레기네. 하늘은 저런 놈 안 데려가고 뭘 하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상대를 알면 알수록 무어라고 판단해서 말하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장발장이 도둑이자 탈옥수, 범죄자라고만 생각했던 법치주의자 자베르는 끝까지 그를 쫓지만 장발장의 선한 일면을 본 순간 고뇌에 빠지고 만다. 불법을 저지르는 그는 분명 자신이 잡아야 하는 죄수이나 동시에 생명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선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자베르는 혼란에 빠진 나머지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지 않던가.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선한 면이 있고 악한 면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만이 존재하는 인물은 매우 특수하며 매우 희귀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알면 알게 될수록 평가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을 평가해도 안 되는 일이다. 자베르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빌런처럼 비춰지는 것은 그가 악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장발장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한 채 그를 평가하기 때문 아닌가.

'쇼맨' 안에는 분명한 가해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을뿐이다.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가 나치 간부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제안한 개념인 '악의 평범성'은 홀로코스트 같은 끔찍한 악행들은 어떤 특정 악당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 대다수 자신이 평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행해진다고 말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생각해보지 않는 '무사고'가 가장 끔찍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네불라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이 배우를 해보라고 해서 배우가 되고자 했다. 사실 그래서 극단에 들어가 연기할 때조차 이 선배, 저 선배가 주는 충고를 다 따르고자 하지 않았나. 사실 베리타스가 건네는 충고까지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지. 한 번도 무언가에 반발한 적 없이 남들의 말을 따르기만 한 사람. '무사고'의 인생.

난 너희의 적이 아니야. 난 명령에 따를뿐. 난 이 한 몸 모두 바쳤어. 내 영혼까지도. (feat. 미드나잇)

명령에 충실하고자 한 것만으로, 승진을 하고 싶고 안전하고 싶은 그 인간 본연의 소소한 욕망 하나에 따른 것뿐이라고 하지만, 그로 인해 얼마나 수많은 학살이 이루어졌는가.

(심지어 수아조차도 미토스의 흉내를 내서 매니저 자리를 잡아볼까 하지 않았나.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의 선동수법을, 괴벨스의 마케팅 실력에서 보고 배울 게 있다고 말하는 책들이 서점에 가득한 걸.)

'쇼맨'에서 이 아이히만의 역을 맡은 것은 간부이다. 네불라는 조금 다르다. 직접적 범죄행위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네불라는 자신의 죄를 직면했기 때문이다. 네불라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도왔는지 알아차렸고 그 사실을 인정했다. 사실, 직면하지 않는 것이 그 개인에게는 더 행복한 일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불라를 '함부로 따뜻하게' 보며 용서할 수도 없다. 그는 분명 끔찍한 독재자의 충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냉정하게' 비난할 수도 없다. 네불라가 지독한 악인이어서 저지른 일이 아니다. 네불라가 아닌 그 누구라도, 우리 중 그 누구라도 손 쉽게 빠질 수 있는 '평범한 악'이었다. 그러므로 함부로 평가하지 않되, 손 쉽게 침묵하지도 않아야 한다. 원래 침묵이란, 중립이란 강자에 대한 암묵적 동의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악행과 침묵은 무수히 반복되고 있다. 네불라가 보면서 자주 있는 일인가 싶어 점점 아무렇지 않아졌을만큼.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나는 네불라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네불라일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내 행동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3.
실제로도 배경적 사안을 제하고 보면 네불라와 수아는 닮아 있다. 먹고 살기 바쁜 집안의 다섯 남매 중에 넷째라서, 어린 동생을 돌보라고 데려온 입양아라서 애매한 입장에 처해 있는 아이들은 그저 사랑 받고 싶어서 '남들이 사랑해줄만한 무언가'를 연기한다. 네불라는 더럽혀진 옷을 빨고 구겨진 옷을 다리며, 수아는 짓무른 과일들을 예쁜 새것으로 바꾼다. 아무 흠도 없던 것처럼 보이고 싶은듯이.

"Good girl, such a good girl. 그 말이 뭐라고 그때는 그토록 탐이 났을까. 아무 소용없는 그 말이 왜 그리 간절했을까."

네불라는 우스꽝스러운 연예인을 연기하고, 수아는 동생을 아끼는 착한 언니를 연기하고.

"오리지널. 오리지널. 오리지널. 어쩌면 저렇게 빛날 수가. 오리지널. 오리지널. 오리지널. 어쩌면 이토록 다를 수가."

하지만 누구든 '오리지널', 진짜 나 자신으로 사랑받고 싶지 않을까. 네불라는 미토스를 본 순간 자신은 저렇게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자신으로 사랑받기를 포기한다. 그리곤 아예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누구에게 말조차 할 수 없는 대역 배우로 살게 된다.

그런 그가 누군가를 흉내내지 않게 된 것이, 자기자신으로서 존재가 부각된 것이 모든 일이 잊혀졌을 즈음 'The Biggest Idiot Show'라는 이름으로 미토스의 죽음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게 된 지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 장면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정도였는데 아주 기나긴 자학과 자기혐오의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네불라가 '오리지널'로서 조명과 박수를 받고 있는데, 모두가 네불라를 좋아해주는데 정작 그 순간 네불라는 자기자신을 가장 미워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조차 1년 정도밖에 사랑받지 못했지만. 어째서 사랑은 쉽게 식고 증오는 오래 가는 걸까.

그리고 '굿걸'을 연기하던 수아는 자신이 잠깐 방임한 사이 동생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을 때, 부모가 자신은 조금도 걱정해주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자신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고 가출해버린다. 그리고 다시는 그 누구의 대체품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결국 지금은 또 '굿데이'가 아닌 날조차 '굿데이'라고 웃으며 말해야 하는 '굿데이 마트'에서 일레인이라는 매니저의 대체품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짓무른 딸기를 싱싱한 딸기로 교체하듯 언제든지 나라는 인간까지도 교체 가능한 세상.

그런데 심지어 수아는 그 '매니저의 대체품'이 되고자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독재자 미토스를 흉내낼 생각도 한다. 미토스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내 신경에 거슬리던 동료 로버트를 적당한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 다른 직원들 모두를 한 편으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매니저 자리에 올라간다면! 그때 망상 속 로버트가, 그러니까 수아 자기자신이 수아를 보며 "이건 마트 매니저야. 왕이 아니라."하고 비난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실제의 로버트가 나타나 점장이 자신에게 매니저를 권했지만 수아를 추천했다고 이야기한다. 동료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점장의 말을 듣고 수아가 로버트에게 잘 보이고자 무심코 내밀었던 비타민을 고마워 하면서. 가짜 언니였고 가짜 사진사였고 가짜 매니저였던 수아가 '오리지널'로 처음 인정받은 순간. 그것도 자신이 미워하고자 했던 사람에게. 그 짧은 인정이 수아가 정말로 미토스 흉내내는 것을 멈춰 주었다. '오리지널'로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수아 또한 함부로 네불라를 평가할 수 없게 된다. 처음에는 구역질 난다고 아주 쉽게 이야기했었으면서 이제 수아는 자신이 평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도망친다.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발버둥쳤던 것은 자신도 똑같으니까.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가 계속 밀려오지만 우리 모두는 헤엄칠 줄을 모른다. 계속해서 제자리 뛰기를 하지 않으면 물속에 가라앉아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올리브농장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나쁘지 않은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가 바쁘게 살아야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한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생각이 났다.

"여기서는 같은 장소에 있으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뛰어야만 하지. 만약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가만히 있기라도 하고 싶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뛰어야만 한다. 그냥 숨 하나 쉬기 위해서 우리는 제자리 뛰기를 해야만 한다. 생각해보면 그 미토스조차도 숨어서 거듭해서 연설을 연습하지 않았던가. 그 누구도 제자리 뛰기를 하지 않고서는 사랑받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해주지 않는 한은.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러니까 다수의 우리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몫인 거겠지.

4.
라틴어에서 기원한 이름들.

파라디수스 Paradisus  에덴 동산, 천국, 낙원
네불라 Nebula 아지랑이 안개 구름
미토스 Mythos 신화
베리타스 Veritas 진리

에덴 동산에 세워진 거대한 신화. 그 신화에 힘을 더해주는 신비로운 안개. 하지만 결국 진리 앞에서 가짜 안개는 무너지고 만다.

특히 Nebula는 영어로는 성운을 보통 지칭하는데 성운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근처 별들로부터 빛을 반사하는 존재 아닌가. 정말 네불라와 딱 맞는 이름이구나 싶었다.

5.
수아의 동생 제인이 엘사를 좋아하는 걸로 나오는데 대충 7-8년쯤 전인 것 같으니 그당시 엘사야 당연히 모든 어린이들의 우상이기도 했겠지만 수아와 제인의 이야기와도 꼭 닮아있어서 등장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고 굿걸을 흉내내는 언니(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그리고 그런 언니를 좋아하는 동생. 멀리 떠나갔던 언니가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려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고 돌아와, 마침내 자매가 서로를 마주하는 이야기.

6.
네불라는 극단에 다니던 시절, 연극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의 이그나시오를 연기하려고 한다. 시각이 없는 세상이 이대로 완벽한 낙원이라고 믿는 맹인학교에 반대하며 비장애인들이 보는 세상을 보고자 하는 이그나시오. 자신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고 싶어하기에 고통스러워하는. (근데 정확히 어느 대사를 연기했는지는 기억이 안 남...ㅋㅋㅋㅋㅋㅋㅋ 다음에 보고 기억해야지ㅠ)

‘아무리 현실이 행복할지라도 거짓 위에 세워진 현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삶의 비극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말하는 존재.
빛을 쫓는 자, 이그나시오.

굳이 비극을 직시하지 않았다면 이그나시오 역시 맹인학교의 낙원 속에서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그나시오는 타협하지 않는다. 이처럼 계속해서 빛을 쫓는 자 이그니시오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네불라 역시 끝까지 침묵하고 타협하지는 못했구나 싶었다.

근데 이번에 후기 쓰려고 찾아보니까 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가 스페인 내란 당시 아버지와 형은 총살당하고, 그 또한 공화 정부군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어서 사형선고를 받고 7년 간의 옥살이 끝에 출옥한 후 집필한 작품이 바로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라는 걸 알았다. 바예호는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끝임없이 투쟁하며 살고자 하는 인물을 주로 다룬다는 평을 보았는데, 그것이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라는 문장과 일맥상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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